<384,400km>

:너와 나의 거리

     박제민

강아지는 멍청하다.
인간에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인간에게 꼬리를 흔든다.
나는 강아지다. 고로 나는 멍청하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그녀를 처음 본 건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비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저 멀리서 보이
는 아지랑이가 날카로워 보였다. 사신의 낫이 아닐까 의심하며 아스팔트 바닥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뉘었을 때였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내 몸이 익는 듯했고 그 고통에 순
간에도 나는 내게 다가와 준 그녀에게 꼬리를 흔들고 싶었다. “어머, 너 괜찮아? 이리와. 나랑 병원 가자.”
그녀의 손이 내 몸을 들어 올렸고 잠깐 거칠었던 그녀의 숨소리가 걱정으로 바뀌었
다. 차는 없는 건가? 나를 안고 그냥 뛰었다. 직장인 듯했고 구두 소리를 내며 천천
히 달렸다.
‘발 아플 텐데….’
내가 왜 이 인간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단지 나를 걱정해주고 있어서? 내게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고 있어서?
“안녕하세요.”
그녀는 몸으로 문을 밀고 들어가며 말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지만,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어이구, 이리 와.”
웬 의사 양반이 나를 안으려고 들었고 나는 그 의사를 거부하려고 작게 으르렁거렸
다. “야, 너 더위 먹었구나?”
의사 양반은 나의 으르렁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았고 그녀가 말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있길래 얼른 데리고 왔어요.”
“길 강아지예요?”
“네.”
“어이구, 너는 또 무슨 사연 이길래 길에서 그렇게….”
의사는 나를 살폈고 나는 그냥 내 몸을 맡겼다. “체온이 40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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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요?”
“네. 수액 달고 조치 취할 테니까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나를 두고 나갔다.
‘야, 어디 가, 인마. 나 두고 가? 이 돌팔이를 믿고?! 야!’
그녀를 눈빛으로 잡았지만, 그녀는 내게
“치료 잘 받아. 밖에 있을게.”
라고 말하고 나갔다.
“살아났네. 다행이다.”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나 창문을 보니 달이 떠서 있었다.
‘이 돌팔이 진짜 나한테 뭔 짓을 했길래 벌써 밤이야?’ “체온도 정상이고. 야, 너 아주 튼튼하구나? 역시 난 대단한 거 같아.”
‘미친놈.’
의사가 아까 그녀를 불렀다.
‘뭐야? 아직도 안 갔어?’ “이제 집에 가도 될 거 같아요. 아, 근데 길 강아지라고 하셨죠?”
“네. 근데 괜찮아요. 저도 키워본 적 있어서.”
‘엥? 나 지금 저 여자 집에 가는 거야? 안 가! 죽어도 안 가!!’ “집에 가자.”
의사는 주삿바늘을 내 발에서 빼고 나를 안아 그녀에게 넘기며 말했다. “길 강아지 데리고 온 거 진짜 잘하셨어요. 병원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선택이었다. 솔직히 좀 놀랐지만 좋은 건 아니었다.
‘돌팔이 자식. 그래도 어디 가서 이상한 놈 취급은 안 당하겠네.’ “넌 다음에 또 보자?”
‘다음에 또? 널 내가 또 왜 봐?!’ “왈왈!”
나는 그를 향해 짖었고 그녀는 당황해하며 나를 데리고 나왔다. “안녕히 계세요.”
“야, 너 칩도 없고 아무것도 없대. 너 나랑 살래?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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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내가? 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으르렁거렸고 이내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야, 너 나 같은 사람 어디서 못 만나. 나랑 같이 살자. 내가 잘해줄게.”
나는 잠시 고민하며 생각했다.
‘음…. 개껌은 잘 주겠지?’ “근데 너도 막 간식 같은 거 좋아하냐?”
‘간식은 당연히 좋아하지. 그냥 개껌 몇 개 물려주면 돼.’
그녀는 나를 안고 불빛이 많은 거리로 발걸음을 향했다. 내가 늘 보던 동네가 아닌
새로운 동네였다. 정말 예뻤다. “마트 가서 너 밥이랑 간식이랑 필요한 거 사고 집에 가자.”
‘유기농이어야 하는데. 막 불량식품 먹일 거는 아니지?’ “근데 너는 뭐 좋아해?”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나도 모르게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내가 지금 견생 4년 차인데 왜 가슴이 이렇게 뛰는 거지…?’ “야, 뭐 좋아하냐고! 짖기라도 해봐.”
나는 여전히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을 살짝 피했다. “하…. 나랑 말하기 싫구나.”
‘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왈. 왈왈.”
“그래, 알았어. 말 안 걸게.”
‘어? 아니, 이 정도 눈치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나?’
마트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많았고 그녀의 품에 안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
들이 한 번씩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미소로 화답했다.
‘아니, 왜 웃어주는데?! 저 손 진짜 확 물어버릴까?’ “하…. 발 진짜….”
그녀는 카트를 갖고 나를 카트에 태운 후 종아리를 뚜드렸다. 나 때문인 거 같았다. 나를 안고 뛰어서.
‘미련한 곰 같으니라고. 구두를 신고 그렇게 뛰면 당연히 아프지, 바보야.’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카트를 뛰어넘어 마트를 돌아다녔다. “야, 어디 가?! 너 돌아다니면 안 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 어디 있어야 하는데….’
전 주인 놈과 많이 와본 마트였기에 대충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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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깄다.’
나는 고리로 이어져 있는 욕실 슬리퍼를 하나 물고 다시 그녀한테 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야, 너 그거 어디서 났어?”
그녀의 발 앞에 슬리퍼를 두고 앉아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왈!”
그리고 머리로 슬리퍼를 밀었다. “야, 너 뭐야?!”
‘참, 나! 이 정도는 기본이지, 뭐.’
그녀는 쭈그려 앉아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진짜 똑똑하구나?”
칭찬은 강아지도 춤추게 하는 법. 기분이 좋아서 꼬리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흔들었
다. 그녀는 슬리퍼를 들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하고 바로 신었다. “엄청 편하다. 고마워.”
나를 한 번 더 쓰다듬었고 나는 그의 손을 핥았다. “이제 장 봐야 하니까 너는 여기 안에 들어가 있어. 나오면 안 돼. 알았지?”
“왈!”
마트는 지루했다. 그래서 카트 안에서 금방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나는 짐에 덮
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계산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이제 가야 해.”
‘좀 도와줘야 하나?’
나는 카트 안에서 물건을 하나씩 물고 그녀에게 건네었다. “고마워.”
그녀는 내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고 내 꼬리는 칭찬에 대한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와~ 개껌!’ “왈! 왈왈!”
“왜? 개껌 좋아?”
내가 개껌을 물어 그녀에게 준 후 짖자 그녀가 물었다.
‘당연하지! 식후 3번 개껌 모르냐고!’ “어휴~ 강아지가 말을 참 잘하네? 이름이 뭐예요?”
계산원이 물었다. “이름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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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요. 지구예요. 이름이.”
지구. 그녀가 내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지구? 엄청나게 잘 지었네~? 지구야,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엄마? 본 지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뭔 엄마야?! 어? 당신 나 알아?!’ “왈! 왈왈! 왈!!”
그녀의 집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방 2개에 거실 1개, 주방 1개, 화장실 1개였다. 그
녀는 들어오자마자 현관에 놓인 물티슈로 내 발을 닦았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
니었다. 굉장히 빠르고 신속했다.
‘스킬이 예사롭지 않은데? 우선 1단계 합격.’
현관은 작았고 신발도 몇 개 없었다. 2개 있는 방마저 하나는 드레스룸으로 발 디딜
틈 없이 좁았고 자는 방도 싱글 침대 하나였다.
‘야, 난 어디서 자?’ “왈! 왈왈!”
“왜? 배고파?”
‘아~ 나, 돌아버리겠네, 진짜.’ “빨리 밥 먹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본격적으로 집을 탐색하기 시작
했다. “야, 방에 들어가지 마! 너 안 씻었잖아!”
침실에 들어서자 화장대 위에 새끼 말티즈와 같이 찍은 사진이 액자 안에 담겨 있었
다. 나는 화장대 의자에 올라가서 그 사진을 봤다. “야, 지구야. 너….”
그녀는 말을 하다가 말고 내 모습을 그냥 지켜보았다.
‘엄청 귀엽네.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가?’ “어때? 귀엽지?”
그녀는 나를 안고 화장대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가까이 보여주었다. “얘는 내가 그전에 키우던 강아지야. 이름은 유키(ゆき). 일본어로 ‘눈(雪)’이라는 뜻
이야.”
‘유키. 예쁜 이름이네.’ “나는 가서 저녁 준비할 테니까 사고 치지 말고 있어. 알았지?”
그녀는 나를 화장대 의자에 다시 내려놓고 방을 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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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야.”
밥 먹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나는 먹다 말고 식탁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
다. “너 보호자가 없어서 내가 임시 보호 하기로 했어. 어때? 괜찮아?”
‘괜찮긴. 자기 마음대로 데려와놓고 이제 와서 묻기 있어?’
그냥 그녀를 바라보았다. “임시 보호 기간은 짧게는 7일, 길게는 10일 정도야. 그때까지만 우선 같이 살아 보
자.”
눈빛이 따뜻했다. “왈!”
“뭐야, 너? 대답한 거야, 지금?”
“왈! 왈왈!”
“좋다는 거지?”
“왈!”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식탁에 내려와 나와 눈높이를 맞추어 손바닥을 내 얼굴로 내
보였다. “잘 해보자, 우리?”
나는 그 손바닥에 내 앞 발바닥을 맞대었다. “왈!”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일주일 하고 3일 더. 나는 임시 보호자를 맞았고 그녀는 임
시 보호 대상을 맞았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윤달’이야. 외자.”
‘나는 지구야. 네가 지어준 이름. 만나서 반가워.’ “그래, 지구야. 만나서 반가워.”
우리의 통성명은 뜨거운 여름 밤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지구야, 나, 갔다 왔어.”
정말 지루했다.
‘왜 이제 오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왈왈! 왈왈!”
“지구야, 산책 갈까?”
달이는 가방을 현관 앞에 내려놓고 신발장 안에서 목줄을 꺼낸 후 미소를 지으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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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산책 가니까 봐준다.’
달이의 손은 진짜 베테랑 개 집사였다. 목줄을 끼우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뭐, 물론 내가 가만히 있어 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자!”
달이와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산책하기 딱 적
절했다. 낯선 곳이었고 그래서 더 볼 게 많아서 흥미로웠다.
‘뭐, 뭐야 저거?! 미친 거 아니야?!’
도베르만이었다. “헐, 도베르만이다. 나 한번 만져보고 싶은데….”
‘어? 야, 저거 도베르만 얼마나 무서운 놈인데 저거.’
달이는 나를 도베르만 쪽으로 끌었고 나는 그 반대로 방향을 잡았다. “야, 어디 가?!”
다행히 그녀는 내게 끌려왔고 공원 구석 한적한 곳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리고 벤
치에 앉아서 사람들이 배드민턴 치는 모습을 구경했고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그녀는
나를 쓰다듬었다.
‘왜 쓰다듬어?’ “너 그거 알아? 내 이름이 왜 달인지?”
‘모르지, 나야.’ “우리 엄마가 내 이름은 꼭 달이라고 짓고 싶었대. 그래서 그냥 달이 됐어.”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에 놀랐다. 서사는 그럴싸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아서. 그녀
를 바라봤다. “야, 너 뭘 안다고 자꾸 보냐?”
내가 귀엽다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왈! 왈왈!”
짓었다. 그러자 달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되게 웃기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두더니 말을 이었다. “네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 키우고 싶거든.”
‘안 나타날 거야. 내 주인은 나를 버렸으니까.’ “너는 어때? 네 반려인으로 나는.”
‘괜찮게 생각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거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다시 배드민턴 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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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답도 안 하고 눈부터 피하기냐?”
달이는 그렇게 말하면 내게 기대었고 나는
‘붙지 마, 더워!’ “왈! 왈왈! 왈!”
하고 짖었다.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났다. 내 전 주인 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통해 달이에게 입양되었다. “지구야, 우리 이제 진짜 가족이야!”
‘그럼 가짜 가족도 있냐?’ “왈! 왈왈!”
“너도 좋지?! 내가 앞으로 진짜 잘해줄게!”
달이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름: 윤지구]
[전화번호: 010 – 6589 – 3209]
내 이름과 달이의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어때? 예쁘지?! 이거 주문 제작해서 만든 거야.”
“왈! 왈왈!”
‘이거 어쩌지? 난 그쪽한테 준비한 게 없는데.’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사랑해!”
달이는 나를 안고 뒤로 넘어져 누웠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가슴에 대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달이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맑고 청량한 그 심장 소리가 내 마음을 얇게 펴주는 듯했다. “지구야. 지구랑 달은 왜 아름다운지 알아?”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멀리서 봐서 그래. 가까이서 보면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고 달은 군데군데 움푹 파여
있어.’ “지구랑 달은 함께여서 아름다워. 지구가 있는데 달이 없으면 밤하늘을 비춰줄 조명
이 없고, 달이 있는데 지구가 없으면 어딘가를 비출 곳이 없으니까.”
내 생각이 짧았다. “우리 평생 함께 하자. 너랑 나는 지구랑 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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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함께 하자. 너랑 나는 달과 지구니까.’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있었고 잠이 솔솔 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못 이
겨 그대로 함께 눈을 감았다. 지구는 달의 품에서, 달은 지구를 품에 안고.
달이 지구에게
지구야, 달과 지구는 384,400km나 떨어져 있대. 그런데도 그 둘은 함께이고 함께 빛나.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으니까 훨씬 빛나고 훨씬 행복할 거야. 지구야, 사랑해. 지구를 안고 달이
지구가 달에게
달아, 나는 버려진 존재야. 사랑받을 가치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적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버텼어. 근데 그 이유가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던 거 같아. 너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느꼈고 보호를 느꼈고 행복을 느꼈어. 달아, 사랑해. 달의 품에서 지구가